札幌に行きましょうか
“우와.”
ヤバイ. 방문을 열어젖힌 에이쇼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창문 옆에 작은 탁자와 의자 두 개가 구비되어 있고, 다다미가 깔려 있는 제대로 된 일본식 료칸이었다. 공간 역시 남자 둘이서 이불을 하나씩 깔고 눕기에 충분해 보였다. 한창 감탄하는 도중, 아즈사의 한 마디가 정말로 이곳에서 밤을 보내겠구나 하는 현실감을 더욱 이끌어내 주었다.
“간단하게 짐 정리하고, 쉬다가 저녁 먹고 나서 온천에 다녀오자.”
아즈사는 일정을 읊으며 목에 둘러져 있던 붉은 목도리를 풀기 시작했다. 삿포로에 도착한 이후 에이쇼 자신이 둘러준 그 목도리. 무채색의 전신을 이룬 아즈사에게 자신의 흔적처럼 둘러진 붉은색은 퍽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고정된 시선 안에서 그것이 풀려 곧은 목이 드러나고, 얇은 손가락에 의해 다소곳이 개어진다.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낯선 방 안의 풍경보다도 에이쇼의 이목을 끄는 장면이었다. 넋 나간 에이쇼의 앞으로 어느새 걱정스러운 표정의 아즈사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아니. 그냥 감탄 좀 하느라~”
에이쇼는 능청스럽게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무언가 다른 데에 시선이 팔려 있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지만, 아즈사는 구태여 묻지 않고 함께 웃는다. 응, 그럼 다행이고.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손에는 옷걸이가 들려 있었다. 아즈사의 손짓에 에이쇼가 겉옷을 벗고, 아즈사가 그것을 받아 들어 옷걸이에 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련의 행동에서 둘의 평소 생활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그런 와중에도 자꾸만 형을 쫓으려는 시선에 에이쇼는 고개를 세차게 휘저었다. ···. 이제 잡생각은 그만. 미묘한 감정과도 같은 옅은 온기가 붉은 목도리에 남아 있었다.
“다 됐다.”
“나도. 아~ 뭔가 잔뜩 샀네.”
짐 정리를 마친 에이쇼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걸터 앉았다. 외국에 간 것도 아닌데, 삿포로의 상점가를 걷다 보면 들떠서 이것저것 사게 되고는 했다. 물론 과소비를 하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은 있다. 함께 처음 온 여행인데 신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아즈사는 무언가 보여주면 진지하게 들어주며 좋다고 하는 경우가 태반이니 이렇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혹시, 너무 어린애 같아 보이진 않았겠지. 전부 형이랑 같이 있는 게 즐거워서라고···. 그런 생각에 괜히 멋쩍게 머리카락을 만지작였다.
옆을 봤을 땐 갈아입을 수 있게 비치된 유카타가 눈에 들어왔다. 펼쳐 들어보자, 연한 회갈색의 단정한 느낌을 주는 유카타였다. ···. 형한테 잘 어울리겠네. 유카타라, 나츠마츠리에서 같이 입었었지. 그때도 차분한 색이었는데. 다음에는 조금 더 화려한 디자인의 유카타를 입은 모습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마치 그 붉은 목도리를 두른 모습처럼······
“에이쇼, 유카타 끈 매 줄까?”
“어? 아아, 응. 부탁할게.”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순간 들려오는 질문에 놀라 맥빠지는 대답을 내놓고 말았다. 형은? 내가 묶어줄게. 그런 말을 할 틈도 없이 아즈사는 먼저 유카타를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멍하니 앉아있던 에이쇼 또한 아즈사가 없는 사이 환복을 위해 옷을 훌러덩 벗어던졌다. 맨살에 유카타가 닿자 시원한 감각이 기분 좋았다. 적당히 앞을 여민 채 의자에 앉아 책상에 놓인 유카타 끈을 바라보았다. 자기는 혼자 매러 가버린 주제에, 나더러는 매 줄 테니까 기다리라니 형도 참···.
사실 이런 끈 따위는 혼자서 금방 묶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도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는 이유는 왜일까. 복잡한 변명은 미뤄 두고 단 하나면 되었다. 미나이 아즈사는 많은 것을 주고 싶어 하고, 키타 에이쇼는 그런 마음을 모두 받아주고 싶어 한다. 이 원리는 둘의 생활에 빈번히 작용하고는 했다. ···이건 조금 큰 이야기고, 지금은 그저 형이 묶어준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어서 그랬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잠시 후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유카타를 입은 아즈사가 나왔다. 신장 탓에 발목 위에서 끊겨버린 유카타에 복숭아뼈가 훤히 드러났다. 허리에는 짙은 갈색 띠가 몸에 딱 맞게 매여 있어 옷자락이 단정하게 떨어지게끔 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이지 아즈사와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이리 와서 서 볼래?”
아즈사의 부름에 에이쇼는 쏜살같이 일어나 그의 앞에 섰다. 순식간에 확 가까워진 그의 체향이 코를 간질였다. 어쩐지, 속옷 바람에 천 하나 걸치고 서 있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을 테고, 몇 시간 후에는 같이 욕탕에 들어가기까지 할 테지만 이 상황의 특수성이 에이쇼를 긴장토록 만들었다. 어릴 때였으면 옷이 풀어헤쳐지든 말든 신경도 안 썼을 텐데. 만약 지금 이 순간 그렇게 된다면 견딜 수 없는 사춘기 소년의 마음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복장을 하고 마주 서 있는 아즈사의 한없이 가까운 시선 때문에.
결국 에이쇼는 참다못해 옷깃을 꽉 부여잡은 채 뒤돌아섰다. 뒤로 묶어주라, 형. 그렇게 말하자 나긋한 음성이 되돌아왔다. 알았어. ···리본 모양으로 묶을까? ちょっと, 평범하게 해줘! 웃음이 오가자 분위기도 평소처럼 돌아오는 듯했다. 전부 그렇게 웃음에 묻어 넘겨버리기로 했다. 직후 닿아오는 손길에 허리께가 뜨거워지고, 익숙함에도 결코 제 것과는 다른 향기가 몸을 감싸왔지만. 모두 그뿐이다. 그저 겨울의 삿포로는 너무 춥고 사람의 체온은 너무 따뜻해서라고.
잘 먹었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마친 아즈사는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에이쇼 때문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직후부터 종종 이상한 기색을 보여 몸이 안 좋은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러나 식사 후에는 괜찮아졌는지 썩 표정이 좋아 보였다.
에이쇼에 대해서는 꿰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반응을 하는 그를 보면 어쩐지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예전에는 정말 뭐든지 알 수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에이쇼도 많이 컸으니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런 성장의 여파를 느끼면 뿌듯하면서도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것이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대상은 에이쇼 뿐이나 아즈사로서는 그 특별함을 인지할 턱이 없었다.
“형, 기분 좋아 보인다?”
“응. 에이쇼가 잘 먹으니까 좋아서.”
“뭐야~ 그럼, 당연하지! 형이 해준 것만큼은 아니지만 맛있다고 할까···.”
민망하네, 에이쇼. 그래도 듣기 좋은 걸. 그렇게 말하니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평소의 기특한 모습과 똑같기 그지없었다. 에이쇼의 웃는 얼굴을 보면 금세 마음이 편안해지니, 나도 꽤 단순하구나··· 그리 느끼게 되는 아즈사였다. 아무렴, 자신이 모르는 에이쇼가 있다면 알 수 있게 될 때까지 뒤에서 지켜봐 주면 될 일이 아닌가. 한 번의 상실을 겪은 아즈사는 이제 스스로 그를 떠날 생각이 추호도 없었고, 앞으로 긴 시간을 함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 아즈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운을 뗐다.
“방에 들렀다가 바로 온천에 갈까? 괜찮아?”
“···괜찮고 말고. 가자!”
또다. 예의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아즈사는 또다시 휩싸였다. 에이쇼가 무언가 억누르고 있었던가? 답에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못하는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름대로-엉망일지언정-의 답을 찾게 되었다.
온천에 들어가기 위해 옷을 벗는 도중, 문득 눈에 띄었다. 에이쇼가 등이 보일 만큼 몸을 조금 돌리고 서 있었기에 더욱 잘 보였다. 평소에는 목도리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도 많지만, 뒷머리를 길러낸 헤어스타일이 에이쇼와 무척 잘 어울린다. 멋 내기를 좋아하는 그 나이 대 학생 같아서 좋구나,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손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향하고 있었다.
“에이쇼도 머리가 꽤 길었네. 잘 어울려.”
무언가 돌아오리라 예상했던 반응과는 달리 에이쇼는 말이 없었다. 손가락에 닿아오는 머리카락이 부드러웠다. 여름이면 더울까 짧은 머리카락을 직접 묶어 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에이쇼라면 더 긴 머리나 아주 짧은 머리를 해도 전부 잘 어울리겠지. 우두커니 서서 굳어가고 있는 한 사람의 심정은 알지도 못한 채. 사색에 잠겨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만지고, 또 만지작였다. 그렇게 5초쯤 지났을까. 에이쇼의 윽박 아닌 윽박이 되돌아왔다.
“아~ 형, 정말! 바보야? 적당히 만지는 편이 좋아!”
···화낸 건 아니다? 성큼 걸어가다 뒤돌아 한 마디를 덧붙인 에이쇼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깐 벙쪄 있던 아즈사는 그 순간, 혼자서 퍼즐을 맞추듯 많은 것을 이해하고 말았다.
자신이 너무 무심했던 것이다. 한창 사춘기인 에이쇼에게. 접촉은커녕 관심만 보여도 부담스러워할 수 있는 나이인데 그렇게 가깝게 굴어댔으니. 에이쇼가 불편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느껴졌다. 참다 참다 저렇게 말했다고 생각하면··· 역시 에이쇼는 좋은 아이다. 그런 아이에게 형으로서 더 섬세하게 행동해야 했다.
“미안해, 같이 가자. 에이쇼~”
완전히 엇나가 있지만, 어떤 의미로는 맞을지도 모르는 성찰이었다. 제 나름의 답을 찾은 아즈사는 미소를 띠며 에이쇼를 뒤따라갔다.
“오늘··· 뭔가 정신없는 하루였어.”
비몽사몽인 채로 누워 눈을 껌뻑이던 에이쇼가 말했다. 온천을 나온 이후로는 또 이상한 기분을 느끼는 일도 없었고, 시간은 금세 흘러 밤이 되었다. 그러나 되짚어 보면 긴 하루였던 것이다. 함께 처음 떠난 여행. 함께임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던 시간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많이 보였던 날.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
···응. 재미있었어. 형이랑 함께라서. 작게 대답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을 땐, 옆으로 누워 한결같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즈사가 있었다. 그가 말했다. 다행이다. 나도 에이쇼랑 함께 와서 즐거웠어. 결코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하나 어둡고, 고요하고, 나른한 이 방에서는 서로의 목소리만이 귓가를 가득 울린다.
시선을 마주한 채로 편안한 정적이 흘렀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익숙하고도 소중한 둘의 시간이었다.
그토록 추운 삿포로의 겨울인데.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따뜻한 걸까. 서로에게 둘러주는 목도리 따위가 그렇게도 추위를 잊게 만들까. 그 답은 아즈사와 에이쇼 둘 중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그만큼 큰 애정을 품고 있다는 것뿐.
“형.”
에이쇼는 졸음이 쏟아지는 채로 무작정 아즈사를 불렀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즈사를 보며 에이쇼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그를 부르면 무엇이라도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손을 잡아달라 이르면 아침이 올 때까지 잡아줄 것이고, 질문을 한다면 어떤 것일지언정 대답해 줄 것 같은 기분.
하지만 어떤 것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 흔하디흔한 인사말을 건네는 것으로 미래를 기약하는 것. 그게 우리의 방식이니까.
“···다음에 또 오자.”
그 말을 끝으로 에이쇼는 눈을 감았다. 이윽고 아즈사는 몸을 기울여 에이쇼의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 주었다. 눈을 덮는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넘겨주며, 그 또한 익숙한 인사말로 화답하듯 속삭였다. 앞으로도 이 시간이 계속될 수 있기를.
お休み.

イチゴ味はないのかな?
冗談も…(笑)
그림 ⓒ 크레페 JAY@bVWijtB2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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